옛 선현들의 술 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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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5-04-13 11:18 조회1,198회 댓글0건본문
北岳 徐正淇 선생의 '정통 가정의례'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1. 우리 나라는 전통적으로 술의 문화가 대단히 고상하여 근대에 이르기까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속을 이루어 왔다.
술을 음식 가운데 가장 고귀한 음식물로 인정한 우리 민족은 술 자체를
숭상할 뿐만 아니라 술에 따른 그릇까지도 중시하여 특별하게 제작하였다.
술을 마시는 예절을 소학(小學)에서 가르침으로써 누구나 술을 마시는
범절이 깎듯하였으며, 술을 먹는 모임에는 모름지기 노래와 춤 및 시조를
곁들이므로써 운치를 돋구어 우아하고 고결한 풍류로 승화시켰던 것이다.
술은 마시는 사람에게 두 가지 작용을 하게 된다.
적당히 먹으면 기분을 돋구어 힘을 내게 하지만 지나치게 먹으면 이성을
마비시켜 자제력을 잃게 한다.
따라서 술을 마실 때는 반드시 상대의 주량에 한계가 있음을 먼저 명심
하여야 한다. 옛사람은 일찌기 하늘, 땅, 조상의 신령에게 제사할 때는
술을 바쳤지만 도깨비나 마귀에게는 술을 준 일이 없으며,
20세가 되어 관례(冠禮)를 한 성인에게는 술을 권하였지만
미성년자에게는 절대로 술을 먹지 못하게 하였던 것이다.
이것은 자제력이 있는 사람이나 체력이 강건한 사람만이
술을 먹을 자격이 있는 것임을 뜻한다.
따라서 체력이 나약한 미성년과 지각이 흐린 정신박약자에게 술을
주는 것은 아주 부도덕한 행위로 규정하여 사회적 규탄을 받아야 했다.
이러한 음주 전통이 곧 술을 대단히 고귀한 음식으로 승격시킨 것이다.
남으로부터 술을 대접받음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성숙한 인격자임을 뜻하게 되어 마침내
한 몸의 영광이 되었던 것이다.
2. 우리 조상들의 음주 예절은 두 가지가 있다.
첫 째가 향음주례(鄕飮酒禮)요, 다음이 군음(群飮)이다.
향음주례는 세종 대왕이 주(周)나라 예법을 바탕으로
그 절도를 가다듬어 각 향교나 서원에서 학생들에게 교과 과목으로
가르치게 했던 6禮(冠, 婚, 喪, 祭, 相見, 鄕飮酒) 가운데 하나로,
어른에게 음식을 공양하는 예의절차를 밝히면서 술을 마시는 것이다.
이에 반해 군음은
오직 떼지어 모여서 부지런히 마시고 노래하고 즐기기 위한 술마심이다.
따라서 군음에는 일정한 형식도 절차도 없이 자유롭게 거리낌없이
즐기는 것이니 애당초 그 예절을 논할 것이 없는 것이다.
경주의 포석정이나 부여의 낙화암 같은 곳이 군음의 유적지라고
할 것이다.
향음주례의 일관된 정신은
첫 째, 의복을 단정하게 입고 끝까지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말 것.
둘 째, 음식을 정갈하게 요리하고 그릇을 깨끗이 할 것.
셋 째, 행동이 분명하여 활발하게 걷고 의젓하게 서고 분명하게 말하고
조용히 침묵하는 절도가 있을 것.
넷 째, 존경하거나 사양하거나 감사할 때마다 즉시 행동으로 표현하여
절을 하거나 말을 할 것 등이다.
술을 마심은 벌써 사교의 자리다.
의사를 표시함이 없이 술만 마시는 것은 상대를 불안하고 답답하게 하여
술맛을 떨어지게 하는 비사교적인 행동이다. 말로 의사를 표현할 때는
예로부터 세번을 권하여 요청하고, 세번을 사양하여 피하는 법이 있는 바,
처음 요청하는 것을 예청(禮請)이라고 하고
이에 대하여 처음 사양하는 것을 예사(禮辭)라고 하며,
거듭 다시 청하는 것을 고청(固請)이라고 하는 바
이에 대하여 거듭 사양하는 것을 고사(固辭)라고 하며,
마지막으로 세번째 청하는 것을 강청(强請)이라고 하는 바
이에 대해 끝까지 사양하는 것을 종사(終辭)라고 하여,
여기에 이르면 더 이상 권하거나 요청하지 않는 것이 예법이다.
3.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소학에서 술에 임하는 예법을 익힘으로써
술로 인한 추태나 분쟁이 거의 없는 풍속의 고장, 예의의 나라가
되었던 것이다. 가는 곳마다 요기(療飢)를 위하여 술집은 있으나
몰려다니며 먹는 습속이 없었고,
술집에 노래와 춤을 추는 기생은 있었지만
옆에 나란히 앉아 같이 마시는 작부는 없었던 것이다.
향음 주례의 전통으로 오늘날까지도 남아있는
우리의 음주 예절을 정리하면 대개 다음과 같이 말 할 수 있다.
술과 음식을 너무 질펀하게 하지 아니하며,
안주는 자기의 접시에다 덜어다가 먹었던 것이며,
술잔은 돌리되 반드시 깨끗한 물에 잔을 씻어서 술을 채워다가
권하여 존경심과 친밀감이 전달되도록 한다.
술 좌석에서 잔이 한 바퀴 도는 것을 한 순배라고 하는데
술이란 대개 석잔은 훈훈하고,
다섯잔은 기분좋고,
일곱잔은 흡족하고
아홉잔은 지나치므로
7잔 이상은 절대로 권하여 돌리지 아니하였다.
4. 예절이란 가면 오고 또한 주면 받는 것이므로 술을 대접받았을 때
뒤에 다시 갚아야 하지만
적당한 시간적 여유를 두어 그 두터운 뜻을 길이 간직하고자 하였다.
오늘날 사람은 가끔 즉시에 즉흥적으로 갚아버리기 위하여
2차니, 3차니 하면서 몰려 다니지만
오히려 경박한 세태의 풍조라고 하겠다.
우리 조상들은 술 좌석을 반드시 공개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아들이나 제자들을 동행하여 술 심부름을 들게 함과 동시에
술먹는 법도를 익히게 하였으니
술자리를 고상하게 승화시켜 일컬은 바 풍류(風流)라고 하였다.
풍류란 덕풍의 유행이니 모든 사람이
그 덕성스러운 행실에 감동하여 본받는다는 이야기이다.
음식앞에 귀하고 천함이나 늙고 젊음을 가리지 않고 골고루 나누어 먹는
자세와 존경하고 사양하고 감사하는 태도를 갖추었고
가끔 기생을 불러서 음악과 춤과 시조로 흥취를 돋구되
반드시 그 자리를 따로하여 난잡함이 없게 하였다.
더욱이 술자리의 뒤끝이 아주 깨끗하여
좌중의 가장 나이 많은 이가 일어나면
모두 다 같이 술자리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주인에게 감사한 뜻을 표하는 것은 그 다음날 하고,
술자리를 파하는 순간에 답례 인사를 하는 것이 아니었다.
5. 술자리에서 대접을 받는 손님은 즐겁고 흡족하게 마시어
주인의 자리를 빛내주는 것이 도리였고,
주인은 손님이 흥겹게 취하여 약간의 실언이나 실수를 하여도
어여쁘게 보아 거두어 주는 것이 도량이었다.
술자리에 아는 사람이 오면 반드시 한잔 술을 권하였고
술을 혼자 마시는 것을 수치로 알았다.
이웃사람이라도 불러서 함께 마시었는데
심지어 계원끼리 먹는 술이라도 아는 사람이 지나가면 불러서
술을 주는 경우까지도 있었다.
끝으로 술에 임하는 가장 높은 경지는
술자리에서의 즐거움도 섭섭함도 영예도 실수도 모두 한번의 웃음속으로
흘러 보내버리는 것이다.
이렇듯 가슴속에 미련을 남겨두지 아니할 줄 알았던 한 겨레의 독특한
음주문화는 지극히 합리적이라고 할 것이다.
사람에게 귀중한 것은 오직 예법을 항상 지키는 것이니,
예법은 절을 함으로부터 시작하여 절을 함으로서 끝난다.
가는 데마다 절하고 일할 때마다 절하고 줄 때마다 절하고
받을 때마다 절하며, 끝날 때마다 절하는 것이니
이것은 지극한 존경과 감사함을 나타내려는 것이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예법이 무너지는 것은 절하지 않음으로부터 비롯된다고 하였다.
1. 우리 나라는 전통적으로 술의 문화가 대단히 고상하여 근대에 이르기까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속을 이루어 왔다.
술을 음식 가운데 가장 고귀한 음식물로 인정한 우리 민족은 술 자체를
숭상할 뿐만 아니라 술에 따른 그릇까지도 중시하여 특별하게 제작하였다.
술을 마시는 예절을 소학(小學)에서 가르침으로써 누구나 술을 마시는
범절이 깎듯하였으며, 술을 먹는 모임에는 모름지기 노래와 춤 및 시조를
곁들이므로써 운치를 돋구어 우아하고 고결한 풍류로 승화시켰던 것이다.
술은 마시는 사람에게 두 가지 작용을 하게 된다.
적당히 먹으면 기분을 돋구어 힘을 내게 하지만 지나치게 먹으면 이성을
마비시켜 자제력을 잃게 한다.
따라서 술을 마실 때는 반드시 상대의 주량에 한계가 있음을 먼저 명심
하여야 한다. 옛사람은 일찌기 하늘, 땅, 조상의 신령에게 제사할 때는
술을 바쳤지만 도깨비나 마귀에게는 술을 준 일이 없으며,
20세가 되어 관례(冠禮)를 한 성인에게는 술을 권하였지만
미성년자에게는 절대로 술을 먹지 못하게 하였던 것이다.
이것은 자제력이 있는 사람이나 체력이 강건한 사람만이
술을 먹을 자격이 있는 것임을 뜻한다.
따라서 체력이 나약한 미성년과 지각이 흐린 정신박약자에게 술을
주는 것은 아주 부도덕한 행위로 규정하여 사회적 규탄을 받아야 했다.
이러한 음주 전통이 곧 술을 대단히 고귀한 음식으로 승격시킨 것이다.
남으로부터 술을 대접받음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성숙한 인격자임을 뜻하게 되어 마침내
한 몸의 영광이 되었던 것이다.
2. 우리 조상들의 음주 예절은 두 가지가 있다.
첫 째가 향음주례(鄕飮酒禮)요, 다음이 군음(群飮)이다.
향음주례는 세종 대왕이 주(周)나라 예법을 바탕으로
그 절도를 가다듬어 각 향교나 서원에서 학생들에게 교과 과목으로
가르치게 했던 6禮(冠, 婚, 喪, 祭, 相見, 鄕飮酒) 가운데 하나로,
어른에게 음식을 공양하는 예의절차를 밝히면서 술을 마시는 것이다.
이에 반해 군음은
오직 떼지어 모여서 부지런히 마시고 노래하고 즐기기 위한 술마심이다.
따라서 군음에는 일정한 형식도 절차도 없이 자유롭게 거리낌없이
즐기는 것이니 애당초 그 예절을 논할 것이 없는 것이다.
경주의 포석정이나 부여의 낙화암 같은 곳이 군음의 유적지라고
할 것이다.
향음주례의 일관된 정신은
첫 째, 의복을 단정하게 입고 끝까지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말 것.
둘 째, 음식을 정갈하게 요리하고 그릇을 깨끗이 할 것.
셋 째, 행동이 분명하여 활발하게 걷고 의젓하게 서고 분명하게 말하고
조용히 침묵하는 절도가 있을 것.
넷 째, 존경하거나 사양하거나 감사할 때마다 즉시 행동으로 표현하여
절을 하거나 말을 할 것 등이다.
술을 마심은 벌써 사교의 자리다.
의사를 표시함이 없이 술만 마시는 것은 상대를 불안하고 답답하게 하여
술맛을 떨어지게 하는 비사교적인 행동이다. 말로 의사를 표현할 때는
예로부터 세번을 권하여 요청하고, 세번을 사양하여 피하는 법이 있는 바,
처음 요청하는 것을 예청(禮請)이라고 하고
이에 대하여 처음 사양하는 것을 예사(禮辭)라고 하며,
거듭 다시 청하는 것을 고청(固請)이라고 하는 바
이에 대하여 거듭 사양하는 것을 고사(固辭)라고 하며,
마지막으로 세번째 청하는 것을 강청(强請)이라고 하는 바
이에 대해 끝까지 사양하는 것을 종사(終辭)라고 하여,
여기에 이르면 더 이상 권하거나 요청하지 않는 것이 예법이다.
3.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소학에서 술에 임하는 예법을 익힘으로써
술로 인한 추태나 분쟁이 거의 없는 풍속의 고장, 예의의 나라가
되었던 것이다. 가는 곳마다 요기(療飢)를 위하여 술집은 있으나
몰려다니며 먹는 습속이 없었고,
술집에 노래와 춤을 추는 기생은 있었지만
옆에 나란히 앉아 같이 마시는 작부는 없었던 것이다.
향음 주례의 전통으로 오늘날까지도 남아있는
우리의 음주 예절을 정리하면 대개 다음과 같이 말 할 수 있다.
술과 음식을 너무 질펀하게 하지 아니하며,
안주는 자기의 접시에다 덜어다가 먹었던 것이며,
술잔은 돌리되 반드시 깨끗한 물에 잔을 씻어서 술을 채워다가
권하여 존경심과 친밀감이 전달되도록 한다.
술 좌석에서 잔이 한 바퀴 도는 것을 한 순배라고 하는데
술이란 대개 석잔은 훈훈하고,
다섯잔은 기분좋고,
일곱잔은 흡족하고
아홉잔은 지나치므로
7잔 이상은 절대로 권하여 돌리지 아니하였다.
4. 예절이란 가면 오고 또한 주면 받는 것이므로 술을 대접받았을 때
뒤에 다시 갚아야 하지만
적당한 시간적 여유를 두어 그 두터운 뜻을 길이 간직하고자 하였다.
오늘날 사람은 가끔 즉시에 즉흥적으로 갚아버리기 위하여
2차니, 3차니 하면서 몰려 다니지만
오히려 경박한 세태의 풍조라고 하겠다.
우리 조상들은 술 좌석을 반드시 공개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아들이나 제자들을 동행하여 술 심부름을 들게 함과 동시에
술먹는 법도를 익히게 하였으니
술자리를 고상하게 승화시켜 일컬은 바 풍류(風流)라고 하였다.
풍류란 덕풍의 유행이니 모든 사람이
그 덕성스러운 행실에 감동하여 본받는다는 이야기이다.
음식앞에 귀하고 천함이나 늙고 젊음을 가리지 않고 골고루 나누어 먹는
자세와 존경하고 사양하고 감사하는 태도를 갖추었고
가끔 기생을 불러서 음악과 춤과 시조로 흥취를 돋구되
반드시 그 자리를 따로하여 난잡함이 없게 하였다.
더욱이 술자리의 뒤끝이 아주 깨끗하여
좌중의 가장 나이 많은 이가 일어나면
모두 다 같이 술자리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주인에게 감사한 뜻을 표하는 것은 그 다음날 하고,
술자리를 파하는 순간에 답례 인사를 하는 것이 아니었다.
5. 술자리에서 대접을 받는 손님은 즐겁고 흡족하게 마시어
주인의 자리를 빛내주는 것이 도리였고,
주인은 손님이 흥겹게 취하여 약간의 실언이나 실수를 하여도
어여쁘게 보아 거두어 주는 것이 도량이었다.
술자리에 아는 사람이 오면 반드시 한잔 술을 권하였고
술을 혼자 마시는 것을 수치로 알았다.
이웃사람이라도 불러서 함께 마시었는데
심지어 계원끼리 먹는 술이라도 아는 사람이 지나가면 불러서
술을 주는 경우까지도 있었다.
끝으로 술에 임하는 가장 높은 경지는
술자리에서의 즐거움도 섭섭함도 영예도 실수도 모두 한번의 웃음속으로
흘러 보내버리는 것이다.
이렇듯 가슴속에 미련을 남겨두지 아니할 줄 알았던 한 겨레의 독특한
음주문화는 지극히 합리적이라고 할 것이다.
사람에게 귀중한 것은 오직 예법을 항상 지키는 것이니,
예법은 절을 함으로부터 시작하여 절을 함으로서 끝난다.
가는 데마다 절하고 일할 때마다 절하고 줄 때마다 절하고
받을 때마다 절하며, 끝날 때마다 절하는 것이니
이것은 지극한 존경과 감사함을 나타내려는 것이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예법이 무너지는 것은 절하지 않음으로부터 비롯된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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