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치를 디자인 하라! 말 잘하는 것도 경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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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5-04-13 11:06 조회1,531회 댓글0건본문
《‘공주’들이 스피치 공부에 대거 나서고 있다. ‘공주(功主)’란 각종 교육기관에서 ‘공부하는 주부’를 가리키는 유행어. 요즘 ‘공주들’ 사이에 대학 부설 평생교육원, 사설 학원, 백화점 문화센터 등에 개설된 스피치 강좌를 듣는 것이 유행이다. 스피치 강좌에는 자원봉사활동에 나서거나 시어머니 남편 아이들과 ‘미운 말’을 주고 받으며 맺힌 갈등을 ‘예쁜 말’로 풀어보려는 ‘공주’만 몰리는 게 아니다. 대통령 후보들의 TV토론회를 보고 “나도 저들처럼 말을 잘 해야 성공할 수 있겠다”며 ‘선행학습’을 하는 조숙한 중학생이 있는가 하면 현지 고교의 강도 높은 토론 수업에 문화적 충격을 받고 방학 동안 고국에서 스피치 과외를 받는 조기 유학생도 있다.
여기에 대학가에 발표식 수업이 늘어나자 방학을 맞아 서울의 스피치학원 근처로 유학온 지방대 학생, 환자 유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카운슬링법을 배워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부지런한 의사…. 얼굴 부위를 성형하듯 어색한 말투, 제스처, 시선 등을 뜯어 고치려는 것은 이른바 ‘말 성형’에 나서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스피치제닉(speechgenic)’을 꿈꾸면서 스피치 강좌를 듣고 있는 이들의 모습에 ‘말 배우기를 권하는 한국사회’의 단면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
말 잘하는 것도 경쟁력
각종 스피치강좌 인기
●말 잘 하는 ‘공주’들
주부 박양신씨(43·서울 서초동)는 “에어로빅 피트니스 수예 등 주부 대상의 문화, 스포츠 강좌를 두루 섭렵한 주부들이 찾는 최신 프로그램이 스피치 코스다. 학부모 활동 및 봉사 활동 기회가 많아져 전업 주부들도 ‘말을 잘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커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열네살짜리 외동딸을 캐나다로 유학 보낸 주부 임원숙씨(43·서울 대치동)는 늘어난 자유시간을 각종 사회 봉사 활동을 하며 보내기로 마음먹은 뒤 스피치 강좌를 듣게 됐다. 임씨의 목소리나 말투는 성우처럼 또랑또랑한 데다 발음도 정확해 굳이 따로 스피치 교육을 받을 필요가 없을 듯했다. 그는 새로운 대인 관계를 맺기에 앞서 전문적인 훈련을 받고 싶었다고 했다.
9일 오전 서울 ‘00스피치언어학원’에서 ‘유머 강좌’를 듣고 있는 수강생들. 수강생 연령층이 20대에서 50대까지 다양했다. 대부분은 ‘공주’(공부하는 주부)였지만 대학생, 의사, 샐러리맨도 있었다.
“남에게 ‘주장’하는 법을 배우기 위한 것이 아니에요. 봉사를 하려는 만큼 남의 말을 잘 들어주고 적절하게 응대하는 방법을 배우고 싶었어요.” 이명례 박사(58·서울 압구정동)는 불혹의 나이에 대학에 진학해 2000년 초 박사 과정을 마친 뒤 강단에 선 늦깎이 대학 강사다. 지난 학기에는 숙명여대에서 한국사 강의를 했다.
“어렸을 때 가부장적인 대가족 문화에서 자랐어요. 친정 어머니는 감정표현을 극도로 자제하는 전통적인 한국의 여인상이었죠. 딸이 목소리를 크게 낸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어요. 그래선지 저는 내내 말주변이 없었지요.” 결혼 후 인생의 대부분을 아내로서 또 세 아이의 엄마로서만 살았다. 강의를 앞두고 수십 명의 자식 또래 학생들 앞에 서기가 부담스러워 교육을 받기로 했다.
“오랫동안 ‘아줌마’로만 살아서인지 목소리가 너무 들떠있다는 자가 진단을 내렸어요. 목소리부터 바꾸고 싶었습니다. 반복적으로 복식 호흡을 연습하면서 여러 사람 앞에서 굵고 크게, 안정된 톤을 유지하며 말하는 법을 터득했습니다.”
최근 각 스피치 교육 기관에는 이 박사처럼 긴 ‘육아 휴직’ 후 재취업을 준비하는 주부들이 적지 않다. 주부로 지내며 소극적이 돼 버린 대인관계, 아마추어적인 언어습관을 교정하려는 것이다. 00스피치언어학원 원장은 “최근 보험, 생활용품 등의 다단계식 네트워크 마케팅 시장에 뛰어드는 주부들이 늘면서 상업적이되 천박하지 않은 세련된 세일즈 스피치를 배우고 싶다는 사람도 많다”고 전했다.
●가족간 말하기 예의도 배운다
타인에게 깍듯한 사람도 정작 가족들에게는 원색적으로 짜증내기, 약점 건드리기 등 말로 상처를 주기 쉽다. 그만큼 편한 상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핵가족화, 개인화한 데다가 인터넷의 발달로 세대간 언어습관 분화가 뚜렷한 현대 가정에서는 일방적인 ‘이심전심(以心傳心)’식 합리화, 지시 전달식 커뮤니케이션은 쉽게 충돌하고 만다. 가족간 커뮤니케이션 예의도 따로 배워야 한다는 인식을 가진 사람이 늘고 있다.
주부 김모씨(62·서울 여의도동)는 20대 후반의 신세대 며느리들과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스피치 수업을 듣고 있다. “꼬장꼬장한 시어머니를 모시고 35년간 시집살이를 했어요. 나도 모르게 며느리들에게도 똑같이 지시적인 말을 하게 되더라고요. 며느리들이 반항은 하지 않지만 우리 세대처럼 시어머니 등쌀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아닌 듯 했어요. 어느 순간 며느리들와 함께 아들, 손주들까지 멀어져간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변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스피치학원 선생님이 가르쳐준 대로 ‘많이 웃어라’ ‘가족의 손을 잡아주어라’ ‘집안일이 아닌 신문이나 방송에서 본 뉴스나 화제 거리로 이야기를 꺼내라’ ‘코믹한 유행어 하나를 반복하라’는 조언을 실천해 봤죠. 요즘은 며느리가 같이 쇼핑가자고 먼저 전화도 해요.”
주부 임모씨(41·서울 역삼동)는 한달 전 아이들 앞에서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에게 욕설을 퍼붓는 큰 실수를 저지른 뒤 최근 한 백화점 문화센터 강좌를 찾게 됐다. “말을 하고 나서 스스로 당황했어요. 스스로 반성하는 의미에서 가족들에게 고운말을 쓰는 훈련을 열심히 받을 생각이에요.” 유명옥(48·서울 일원동)씨는 스피치 학원 유머 강좌에서 익힌 우스개들을 외어 남편에게 들려주며 ‘하루에 남편 한 번 웃기기’를 실천하려 노력하고 있다. 스피치 학원에서는 매주 한 번씩 재미있는 유머 한 가지씩을 찾아와 학급 동료들 앞에서 실감나게 발표하는 훈련을 시키고 있다.
“말 습관에 대해 신경쓰기 시작하면서 남편에게 ‘잘 다녀오셨어요’라고 건네는 말 한마디도 뉘앙스가 많이 달라졌다고 좋아하더라고요.” 현재 유씨는 대통령 선거 직전 후보자들의 TV 토론회 모습을 보고 불현듯 “나도 스피치를 배워야겠다”고 선언한 아들 김한석군(14·대왕중 2년)과 함께 여유롭게 말하기, 인간미 있게 말하기 등을 사이좋게 연습하고 있다.
또다른 스피치 강좌 수강생인 김미옥씨(52·서울 일원동)의 대학생 아들도 학원에서 배운 유머 한마디씩을 전하는 엄마의 ‘썰렁한 농담’에 배꼽을 잡는다.
“엄마가 코미디를 하면 정말 썰렁해. 그런데 그 썰렁한 모습이 더 웃겨. 그런게 요즘 정말 유행하는 코미디인데….”
국선도 강사 김모씨(34)는 스피치 수업을 받은 뒤 ‘자신감 있는 강사’에 덤으로 ‘사랑받는 남편’까지 됐다. 아내가 화를 내면 피하거나 일방적으로 무시하지 말고 눈 딱 감고 살갑게 말을 건네보라는 조언에 따른 결과였다. 단 한 문장에 아내의 화가 눈녹듯 사라졌다. “예쁜 얼굴 찡그리면 안 되지.”
●말 배우는 ‘선생님’들
‘공급 과잉’에 따른 동종 업체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의료 및 법률 서비스 전문직 종사자, 사교육 부문 강사들도 ‘말 성형’에 나서고 있다. 서울 구로동에서 회계사무소를 운영하는 회계사 한경열씨(42)는 ‘상대방과 눈을 맞추라’ ‘남 앞에 서는 것은 위기가 아니라 기회다’는 등의 덕목을 반복적으로 학습한 뒤 보다 적극적으로 고객 개발에 나설 수 있게 됐다. 스스로 내성적이라고 생각하는 한씨는 이전까지만 해도 직접 나서 고객을 개발하는 영업력에 자신이 없었다.
“회계사가 말 잘 해서 됐나요? 책하고 씨름해서 된 거지. 생각해 보면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토론, 토의 등 말 잘 하는 법에 대한 교육은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것 같아요. 한 학기동안 남 앞에 서서 발표하다보니 대인 관계가 한결 자연스러워졌어요. 사실 스피치 강좌는 아주 새로운 내용을 학습한다기 보다 훈련을 통해 스스로 한계라고 느꼈던 벽을 넘는 과정인 듯 합니다.”
스피치 전문가들이 조언하는
●모든 공식적 발언은 의식적으로 3분내에 마무리하라. 현대인들은 3분 이상 한 사람에게 집중할 수 없다. 3분간 할 수 있는 말은 글로 정리하면 200자 원고지 넉 장 분량. ●세상의 모든 정보에 귀 기울여라.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다보면 풍부한 화젯거리를 얻을 수 있다. ●사건 중심으로 말하라. 추상적인 발언은 신뢰도를 떨어뜨린다. 어떤 일이 있었고 무엇을 보았는지 신문 기사처럼 자세히 묘사하도록 노력한다. 묘사하다 보면 머릿속 한 가운데 숨겨둔 잘 안 쓰던 단어를 발견해 낼 수도 있다. ●아랫사람을 꾸짖을 때는 ‘샌드위치 화법’을 써라. 칭찬→ 비판→ 격려 순이다. ●말의 속도를 조절하라. 감칠맛 나게 말하는 사람들은 말의 늦고 빠름이 주는 효과를 안다. 강조하고 싶은 점, 숫자, 인명, 지명 등 사실을 나열할 때는 속도를 늦춰 정보의 전달력을 높인다. ●침묵을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적극 활용하라. 중요한 대목에서 상대의 눈을 응시하며 잠시 침묵을 지키는 것은 백마디 말보다 강력한 힘을 낼 수 있다. 미국의 링컨 대통령도 이 방법을 자주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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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잠실에서 개인 치과병원을 운영하는 의사 최창규씨(57)는 환자들에게 보다 친절하게 대하는 법을 배웠다.
“피부과 치과 성형외과처럼 친절한 상담을 요하는 진료 과목의 의사들은 유머, 재치, 안정감 등이 큰 경쟁력일 수밖에 없죠. 병원간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단골 환자를 유지하는 비결이 될 것입니다.” 올 3월부터 서울 중곡동 국립정신병원에서 레지던트로 근무하게 된 이영훈씨(36)도 같은 이유로 스피치 학원을 찾았다.
“정신과 의사만큼 환자와 밀착해야 한다는 것을 절감하는 분야도 없겠죠. 상대의 반응에 피드백하는 기술, 사람들의 성향에 맞게 기분을 좋게 해 줄 수 있는 말하기 법을 배우고 싶습니다.”
학원 강사들도 암암리에 스피치 교육을 받고 있다. PMA스피치 클리닉 문준우 원장은 “학생들이 실력과 함께 ‘개인기’를 갖춘 강사를 선호하면서 현란한 손짓, 발짓 등 비언어적 수단, 신세대들이 선호하는 말투를 배우려는 사설 입시학원 강사들이 많다”고 말했다.
● 스피치 우등생을 꿈꾸며
호주 시드니에서 1년8개월째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는 김우영군(16·서울 풍납동)은 방학을 맞아 한국으로 돌아온 뒤 곧장 스피치 학원에 등록했다. “그곳 학교생활에서 가장 갑갑한 것이 토론, 발표 수업이었어요. 그 곳 아이들은 나보다 공부는 못해도 발표는 잘 하더라고요.”
대전의 한 대학 전자과에 다니는 김호영씨(27·충북 옥천군)는 방학 동안 서울로 ‘스피치 유학’을 왔다. 지방에는 스피치 강좌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인터넷을 뒤져 학원을 정한 뒤 유학을 감행했다. 발단은 부쩍 늘어난 토론, 발표 수업이었다. “준비한 자료를 발표해 성적을 매기는 날이었어요. 1시간 분량을 충실하게 준비해 갔죠. 막상 50여명의 학생들 앞에 서니까 얼마나 식은땀이 나는지…. 겨우 10분 발표하고 내려온 뒤 가슴을 쳤죠.”
경기 성남시 분당신도시의 인재입시학원 조규헌 이사장은 지난해 1월 서울 반포동에 ‘스피치커뮤니케이션연구소’를 내고 고3 수험생 및 일반인들에게 스피치 이론을 가르치고 있다. “입시학원에서 가르치는 문제 은행식 ‘족집게 구술지도’는 한계가 있더라고요. 원론적인 스피치 원칙에 따르는 것이 각종 인터뷰에서 순발력을 발휘하는 데 더 효과적입니다.”
인터뷰 기초 강좌에는 △추상적인 질문은 구체적 예로 답할 것 △구체적인 질문에는 추상적으로 답할 것 △본인의 인성이나 지망 분야와 관련된 내용은 결론부터 말하고 예를 드는 두괄식을 택할 것 등의 내용이 포함된다.
발표수업을 강조하는 제7차 교육과정이 도입된 후 ‘3분 스피치’를 수행 평가 항목에 추가하는 중학교가 많아졌다. 이에 따라 스피치 과외를 필수로 생각하는 중학생 학부모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커버스토리] 눈물-향수 부각…감성적 스피치 시대
언론학자, 국어학자들은 1997년의 외환위기를 우리 사회에 현대적 개념의 ‘스피치 문화’가 도입되기 시작한 시점으로 본다. 이후 다국적 기업들이 쏟아져 들어왔고 국내 기업문화도 글로벌화되면서 수평적 토론 토의 발표 문화가 정착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2001년 11월에는 국내 신문방송학과 교수, 중견 언론인들이 주축이 돼 ‘한국스피치커뮤니케이션학회’가 만들어졌다. 날로 수요와 공급이 늘고 있는 스피치 정립의 필요성을 인식한 때문이었다. 학회는 지난해 11월 말 학생 두 명씩 한 조가 돼 제한된 시간 내에 2 대 2 토론을 펼치는 ‘제1회 전국 대학생 아카데미식 토론대회’를 주관하기도 했다. ‘침묵은 금’임을 강조하는 유교적 사고 방식의 영향으로 스피치 문화가 제대로 자리잡을 수 없었던 한국사회에서도 스피치와 관련된 각종 트렌드들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감성을 건드리는 레토릭 구사에 뛰어난 인물로 꼽히는 탤런트 최유라,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 개그우먼 박경림(위에서부터)./동아일보 자료사진
● 취업준비생부터 주부까지 최근 스피치 강좌를 찾는 사람의 다수는 여성이다. 기업의 사내교육용 스피치 강좌를 제외하고는 백화점 문화센터, 대학 내 평생교육원, 사설학원 등의 수강생 절반 이상이 여성으로 채워지고 있다. 스피치리더십 교육원의 손석호 원장(44)은 “1980년대 전체 스피치 교육 수요의 10∼20%를 차지하던 여성 비율이 2000년 이후 65% 이상으로 증가했다”고 말했다.
백화점 문화센터 프로그램은 주부들의 최근 관심사를 한눈에 보여주는 바로미터 역할을 한다.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문화센터에서는 3월부터 스피치 강좌가 2개에서 4개로 늘어난다. 문화센터의 서성숙 과장은 “스피치 강좌는 수강생들이 많아 선착순 접수인 수강신청이 학기마다 일찍 마감된다고 종강 후 만족도 평가에서도 5.0 만점에 4.8 이상으로 다른 강좌에 비해 높게 나타난다”고 말했다.
롯데, 신세계 백화점 문화센터도 90년대 말부터 ‘성공화법 & 파워스피치’ ‘세치의 혀가 인생을 좌우한다’ ‘발표력 탄탄 교실’ 등 5세 이상 유아부터 성인까지 아우르는 스피치 강좌를 운영하고 있 개설해 수강생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대학에서도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스피치 교육 센터가 늘어나는 추세다. 1996년 3월 경희대 언론정보학과 허경호 교수가 국내 최초로 대학원 내에 개설한 스피치, 토론 전문과정 ‘스피치 아트 클리닉’의 수강생은 초기에는 유명 정치인 및 경제인, 고위 공무원이 대다수였지만 점차 주부 등 일반인이 많아지고 있다. 이곳에서 교육을 받은 스피치 강사들이 최근 곳곳에 스피치 학원을 차리기도 했다.
이화여대에서도 1997년 2학기부터 스피치 강좌를 개설해 재취업을 앞둔 주부, 유치원 원장, 중소기업체 사장 등 다양한 계층의 수강생을 교육하고 있다. 1 대 1 면접 시간이 길어지고 토론식 면접을 진행하는 기업이 늘어나면서 취업 준비생들이 따로 스피치학원을 다니는 경우도 많아졌다. 2002년 2월 인터넷 채용정보 사이트 휴먼피아가 1930명의 회원을 대상으로 ‘면접시 가장 중요한 요소’에 대해 설문 조사한 결과 남성 응답자 가운데 40%가 ‘말발’(1138명 중 444명)을 ‘실제 능력’(386명)보다 더 중요한 요소로 꼽았다. 여성은 능력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았지만 그 다음으로는 ‘말발’(792명 중 213명)과 ‘외모’(212명)의 중요도를 같은 수준으로 꼽았다.
‘이선미 스피치랩’의 이선미 강사(전 동아방송 아나운서, 불교방송국 편성제작국장)는 “아나운서 지망생 뿐만 아니라 방송기자 지망생 및 일반 기업에 취업하려는 학생들 사이에서도 ‘전문적인 스피치 수업을 받지 않고는 최종 면접을 뚫을 수 없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면접 대비 스피치 시장이 확대되는 추세”라고 말했다.
● 웅변학원도 스피치학원으로 길게는 50년 이상의 전통을 자랑하는 웅변학원들은 발빠르게 스피치 학원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웅변이 대중연설만을 뜻한다면 스피치는 대중연설은 물론 토론, 토의, 프레젠테이션, 대화, 손짓 눈빛 등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아우른다.
1995년 문을 연 대한언어학원은 지난해 4월 ‘스피치 & 리더십 센터’로, 1955년 창립된 ‘한국심리변론학원’은 1999년 ‘ 스피치 & 리더십 교육원’으로 이름을 바꿨다. 1961년 문을 연 ‘국제언어학원’도 2001년 ‘스피치언어학원’으로 개명했다. 스피치학원 원장들은 “과거 웅변학원 커리큘럼의 주 메뉴였던 대중연설법의 비중이 줄어드는 대신 재미있게 말하기, 짜임새 있게 프레젠테이션하기, 목소리에 감정 싣기 등이 강조된다”고 전했다.
1950∼80년대까지 언어장애나 소심한 성격을 치료하기 위해 화술 학원 또는 웅변 학원을 찾았던 사람들은 이제 이 분야에 특화된 상담치료기관이나 정신과 등으로 이동했다. 현재 스피치 학원생 가운데 ‘문제’를 갖고 찾아오는 사람들은 20% 미만인 것으로 추산된다.
● 시대에 따라 변한 스피치 트렌드 동아방송 부국장, KBS 아나운서실장 등을 역임한 수원대 전영우 명예교수(국어국문과·70)가 의뢰받은 스피치 관련 강의의 제목만 훑어봐도 시대별로 어떤 스피치가 주목을 받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박정희 대통령 시대에는 공무원교육원 등에서 ‘브리핑법’ 강의를 의뢰했다. 노태우 대통령 시대에는 일부 대기업에서 “원탁형 회의를 도입하겠다”면서 ‘대화기법’ 강의를 맡겼다. 최근 5년간은 ‘토의 토론과 회의’ 수업을 주로 맡고 있다. 그는 스피치에서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강조되는 트렌드를 반영해 최근 ‘느낌이 좋은 대화방법’을 출간했다.
‘한국스피치커뮤니케이션학회’ 임원인 한림대 유재천 부총장(언론정보학부 교수), 서울대 추광영 교수 (언론정보학과), 광운대 임태섭 교수 (미디어영상학부), 경기대 차인태 교수(다중매체영상학부) 등은 “대통령의 정책 또는 스피치 습관, 주요 미디어의 종류와 발달 정도가 스피치 트렌드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방송 매체로는 라디오가 유일했던 이승만 정권 시대 전후(1950∼60년대)에는 호흡이 길고 비장감마저 감도는 유장한 스타일의 스피치가 인기였다. 말로 모든 상황을 묘사해야 했던 방송 아나운서들의 스피치에도 복문(複文)과 만연체, 전형적인 웅변조가 많았다.
△박정희∼전두환 대통령에 이르는 군부 정권시대(1970∼80년대)는 군대식의 요약 보고형 ‘브리핑 스피치’가 꽃을 피운 때다. 대중연설에서도 짧고 힘있는 선동적인 말투가 쓰였다. TV의 등장으로 구구절절한 만연체형 설명도 필요 없어졌다. △노태우 대통령 시대 이후 현재까지 스피치에서는 목소리, 태도, 이미지 등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 수단의 비중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첨단 미디어의 발달로 텍스트보다 비주얼의 영향력이 확대되기 때문이다.
역대 대통령들의 주요 스피치를 분석한 전영우 교수는 “노태우 대통령 이후부터 비유법을 사용한다든지 단문을 사용해 누구나 알아듣기 쉽게 만든 ‘시민형 연설’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김대중 대통령때는 정치 연설마저 ‘프리토크식’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 스피치가 감성화된다 ‘스피치랩’의 이선미 강사는 라디오 인기 프로그램 진행자들의 음성 분석 결과를 한국화법학회지 ‘국어화법과 방송언어’(1999)에 발표했다. 연구결과 목소리톤, 호흡, 속도, 음조의 높낮이가 변화무쌍하고 다채로운 탤런트 최유라씨의 스피치가 현대 청취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스타일로 드러났다. 이 강사는 “감정을 숨김없이 나타내는 감성적인 스피치에 공감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며 “목소리, 성량 등의 조건은 열악하지만 감정 변화의 양 극단인 파안대소부터 울음까지를 순식간에 오갈 수 있는 개그우먼 박경림이나 어눌한 말투의 재일교포 가수 아유미 유의 레토릭이 최근 인기를 모으는 것도 그 예”라고 분석했다.
스피치언어학원 송미옥 원장은 1997년부터 스피치 강좌에 유머 수업을 추가했다. 그는 “요즘은 말만 잘 하는 스피치법을 구사하면 시기와 반감을 낳는다. 유머 수업은 감성적인 스피치를 대비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노무현 대통령당선자의 선거캠페인이 감성적인 스피치 트렌드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광고평론가 김홍탁 국장(제일기획 크리에이티브디렉터)은 “눈물과 향수(鄕愁)를 부각시켜 감성적 코드를 자극한 것이 신세대들에게 익숙한 최근 상업광고 트렌드와 맞물렸다”고 말했다.
임태섭 광운대 교수는 “포퓰리즘이 필요한 정계, 대중문화계에서는 스피치가 감성화되지만 거래, 협상, 전략 수립 등이 필요한 비즈니스 상황에서는 보다 지적이고 분석적인 스피치가 요구됨으로써 스피치 트렌드의 양극화 현상이 심화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
출처 : 김현진기자. 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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